딸아이가 개학을 했다. 5주간의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아이는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 다시 공부하고 시험을 치뤄야 한다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인지 방학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했다.
엄마인 나도 그 옛날 그랬었는데 딸이라고 다를까…
딸아이네 학교에선 1학기가 끝나면 독서상을 준다.
1학기 동안 읽은 책의 권수가 100권이 넘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상이다. 그 상을 받기 위해 학기초에는 읽는 책에다 예전에 읽은 책까지 열심히 적었다. 책의 제목을 적고, 간략하게 한 줄로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다. 책 읽기는 좋아해도 적는 것이 귀찮아 읽기는 하지만, 독서 노트에 적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개학하고 3일이 지났을까. 학교에 다녀 온 딸아이는 자기네 반에서 자기가 독서 3등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 내가 우리반에서 3번째로 책을 많이 읽었다!"
"누가 제일 많이 읽었는데?"
"A가 제일 많이 읽었어. 450권이래"
"야~~그럼 2등은?"
"C가 2등인데 380권인가? 그렇데"
"울 딸은?"
"150권 되나?"
멋쩍은 듯 웃음을 흘리고 제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더니 다시 나와 말한다.
"엄마, P 알지? 걔는 1000권이 넘었데. 그래서 2학년 TV에서 상 받았다"
교장선생님께 대표로 상 받는 걸 각 반의 TV로 보여준 모양이다. 세상에, 1학기 동안 1000권을 넘게 읽었다고? 물론, P양이 다독하는 것은 1학년 때 봐 왔지만, 놀랍다.
중요한 건, 그 아이가 읽는 책이 그림책도 아니고, 글씨가 빽빽한 200~300쪽이나 되는 책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그 아이는 밥 먹는 거 빼고는 나머지 시간엔 책만 읽는 것일까. 남의 아이는 1000권을 넘게 읽었다는데 딸아이는 고작 150권이 넘었으니 적어도 7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 아닌가 싶어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다른 엄마가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에는 관심은 커녕 알고 싶지도 않으면서 다른 집 아이가 10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니깐 뒤쳐지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웃기지 않은가. 다른 엄마가 자기 계발을 위해 무슨 책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그저 다른 아이가 독서량 비해 초라한 딸아이 독서량만 염두에 두고 있다.
많이 읽는 것보다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읽었으면 했던 내 바램과는 다르게 자꾸만 독서량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문제는, 요즘 딸아이가 읽고 또 읽고 하는 책이다.
그렇게 열심히 20권이 다되는 책을 읽고 또 읽고 했지만, 학교 도서 노트에 적을 수 없어 방학 동안 딸아이는 거의 읽은 책을 적지 못했다.
교육 만화시리즈라고 그것이다. 한자 만화 시리즈(마법 천자문)에 푹 빠져있다. 읽고 또 읽는다. 예전에 내가 들장미 소녀 캔디를 읽고 또 읽었던 것처럼...그래도 한자를 한자씩이라도 익히는 데 의미를 둬야 하나 어쩌나 걱정이 되긴 한다.
안 사주기도 그런 것이 반 친구들이 다 읽고 있는 책을 아이만 모르게 할 수도 없을 만큼 그렇게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다. 여름 휴가를 갔을 때도 딸아이는 마법 천자문을 챙겨왔다. 서너권을 챙겨서 들고 다니면서 읽었는데, 가는 곳마다 딸아이 또래 애들의 시선을 받았다.
'저거 몇 권이지? 어, 15권이다' 라는 수근덕 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그만큼 트랜드인 책이란 것은 알겠는데 이 책이 그닥 한자를 익히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지나가다 예전에 한글을 떼고 간판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 한자 간판을 읽기도 한다.
"어, 집 가(家)다."
"사람 인(人)이랑 비슷하다"
뭐, 이런식이다. 쓸 줄은 몰라도 읽는 것은 제법 하는 것이다. 그래 봐야 몇 자 안되지만…^^;;
그래도 만화를 읽고 이 정도의 학습 효과를 본다면 괜찮다는 생각이었는데 학습적인 효과보다는 나쁜 영향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이를테면, 만화속에 나오는 '꺼져!' 같은 만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 어휘선택이 그렇다.
오늘로 '마법 천자문' 금독력을 내렸다. 이미 읽은 책이고, 더 이상 복습은 하지 말라고, 하려면 책과 함께 따려온 한자카드나 보라고 했다.
책도 분명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무 책이나 아이한테 도움이 된다고 읽으라고 닥달하는 것은 책에 흥미를 더 잃게 하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책을 읽고 정리하는 것만 없다면 더 독서량이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효과적인 독서를 위해 책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니 어쩌겠나.
근데, 독서량에 만화책을 포함해도 되는 건가? 일단, 학교에서는 독서 노트에 적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아이들이 만화책만 보려한다고 학교에 만화책도 가져오지 못하게 했다.
분명, 도움 되는 만화시리즈도 많다. 과학에 관련된 만화는 쉽게, 접근하기 좋아서 어른인 내가 읽어도 재밌다. 내가 읽고 있는 조성왕조실록도 더 재밌게 역사를 이해할 수 있어 애독하고 있음이다.
책이라고 다 책이 아닐 것인데...질 높은 책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이 더 딸아이한테는 피가되고 살이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