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와>에서 노홍철 씨가 S.E.S. 유진 씨를 뒤에서 껴안고 부빈 장면 때문에 시끌시끌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쯤 되면 성추행이라면서 노홍철 씨에 대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또 어떤 분들은 노홍철 씨는 제작진의 연출 의도에 따라간 연출된 상황일 뿐이라면서 성추행 주장을 하는 분들이 오버를 한다고 맞받고 있습니다. 과연 노홍철 씨의 행동이 성추행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는 접어 놓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이 상황은 연출된 상황인가? 아닌가? 이 얘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특히 이 문제를 다룬 몇몇 블로그 포스트에서는 노홍철 씨의 행동이 대본에 다 지정되어 있는 것이라면서 작가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하는데, 이 점을 먼저 얘기해야 할 듯합니다.




실제로 예능 프로그램의 대본을 보신 분은 알겠지만 방송 분량과 비교하면 뜻밖에 내용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대본은 드라마와는 달리 그야말로 '구성' 대본입니다. 다시 말하면 큰 줄기로 볼 때 프로그램의 구성과 진행 순서를 잡아 주고 이번에는 어떤 주제로 얘기를 할 것인지, 진행 과정에서 꼭 빼놓지 않아야 할 포인트는 어디인지, 이런 것들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예능 대본은 드라마 대본처럼 대사와 행동을 일일이 적어 놓고 그대로 연기하게 하는 그런 대본과는 많이 다릅니다. 제 생각으로는 노홍철 씨가 유진 씨를 껴안은 장면은 대본에 적혀 있을 확률이 0%입니다. 그 때 출연자들이 춤을 추는 정도는 대본에 있겠지만 '노홍철이 유진을 뒤에서 껴안는다'는 식으로 디테일한 동작까지 시시콜콜하게 쓸 예능 작가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더 재미없어지기 때문에 요즘은 상황만을 만들어 준 다음 출연자들의 애드립에 맡기는 추세입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서 프롬프터로 뭘 하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인터뷰 때 물어 봐야 할 질문을 빼먹어서 그걸 물어보게 하거나, 진행이 늘어졌을 경우에 빨리 다음 단계로 전환하라든가 하는 때에 쓰는 거지 이번처럼 '뒤에서 껴안아라'는 식의 프롬프터는 쓰지도 않고, 게다가 저렇게 춤추고 하면서 출연자들이 분위기에 도취되는 상황에서는 프롬프터 써 봤자 출연자들이 보지도 않습니다. 분위기 타고 있을 때에는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물론 예능 대본에도 요소 요소에는 대사와 지문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막상 녹화에 들어가 보면 대본 대로 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오프닝과 클로징, 각 코너별로 시작이나 끝부분과 같은 진행 멘트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출연자들의 능력에 의지하는 게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추세입니다. 오히려 그야말로 대본에 적혀 있는 대로 하게 되면 재미도 떨어지고 분위기도 딱딱해집니다.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쪽대본과 같은 상황을 제외하고는 보통 촬영에 들어가기 며칠 전에 연기자들에게 대본이 제공됩니다. 연기자들은 그 대본을 통으로 다 외우고 들어가는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 그 내용을 숙지하고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능 프로는 보통 녹화 당일에 출연자들이 녹화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대본이 제공됩니다. 대부분은 그 전에 대본을 줘도 잘 안 봅니다. 그래서 녹화장에서 메이크 업 하고 대기하는 동안에 대본을 쓱쓱 넘겨 보는 게 보통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PD나 작가가 출연자들과 함께 한장 한장 넘겨가면서 대본 리딩을 하는 건데, 이 때도 중요한 진행 흐름이나 포인트만 설명하지 일일이 대사나 지문을 읽어가면서 리딩하지는 않습니다. 녹화 중간중간에 꼭 필요한 부분은 작가들이 카메라 뒤에서 종이나 보드에 필요한 내용을 써서 출연자들에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꼭 따라가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출연료 많이 받고 능력 좋은 출연자일 수록 대본에 덜 의지합니다. 요즘 예능 프로의 트렌드가 상황만 짜 주고 출연자들이 알아서 놀도록 하는 '방목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진행 흐름만 대본을 따라갈 뿐 대본에 있는 대사는 거의 하지 않는 출연자들이 많으며, 때로는 대본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흐름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고 가는 연예인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능력을 인정 받고 여러 예능 프로들로부터 러브 콜을 받게 마련입니다. 하급들은 대본 속에 갇혀 있고, 중급들은 대본에 제시된 상황 속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놀며, 고급들은 대본에 없는 상황을 자신이 만들어 내기도 한다면 정리가 될까 싶네요. 어쨌거나, 대본을 카드 크기로 나눠서 진행자들이 들고 보는 '큐 카드' 같은 경우에는 대본에 있는 대사를 많이 쓰지만 보통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큐 카드'를 잘 쓰지 않으며 그런 경우에 출연자의 대사나 행동은 대본에 그다지 의지하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대본에 있는 대사는 어떻게 보면 진행의 흐름을 이해하고 대략 이런 분위기로 갔으면 좋겠다는 '예시'가 들어 있다고 보면 적당할 듯합니다.

노홍철 씨의 당시 논란이 된 장면으로 얘기를 다시 돌려 보자면, 노홍철 씨의 당시 행동은 계획된 연출이 아니라 돌발 상황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실제로 예능 프로그램 녹화에서는 수많은 돌발 상황들이 생기곤 합니다. 친한 출연자들끼리 가볍게 욕지거리 하는 건 흔히 있는 일입니다. 오히려 그런 게 좀더 분위기 풀어주고 원활하게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죠. 물론 출연자들은 그런 게 방송에 나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PD가 다 편집해 줄 거니까, 하고 믿는 거죠. 노홍철 씨 같은 경우에는 뭔가 목적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다기보다는 분위기 타서 오버했다고 보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자, 어쨌거나 상황은 녹화 테이프에 담겼고 이제 공은 PD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과연 이 장면을 살릴 것인가 편집할 것인가. 이걸 결정하는 몫은 가편집과 종합편집을 담당하는 PD들에게 있습니다.

때로는 출연자들이 분위기에 취해서 좀 심한 말이나 행동을 한 다음에, 녹화 끝나고 나서 그 부분을 편집해 줄 수 없겠냐고 PD에게 요청하기도 합니다. 분위기 타고 한참 오버하다 보면 좀 심한 행동이나 말을 할 수도 있고, 이런 게 방송에 나가면 욕먹기 딱 좋을 테니까요. 그런 요청을 하면 PD들은 들어 주는 게 보통입니다. 굳이 싫다는 거 억지로 넣어서 그것 때문에 시청률이 10% 20% 뛴다면 모를까, 사소한 걸로 서로 기분 나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이번 경우에는 아마도 노홍철 씨도 이게 그렇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듯하고 PD 역시도 좀 갸우뚱할 수는 있겠지만 역시 큰 문제는 안 될 거라고 보고 그대로 내보냈을 확률이 큽니다. 이게 정말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다면 결국 노홍철 씨나 제작진이나 어느 정도 일부씩 책임을 가지고 있게 되는 셈인데, 그 행동 자체는 노홍철 씨 책임이라고 할 수 있겠고 이걸 방송에 내 보낸 것은 PD 책임이 되는 겁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게 과연 성추행인지 아닌지는 노홍철 씨가 껴안았던 당사자인 유진 씨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도 있고 하니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정황을 볼 때 이번 일은 연출진이나 노홍철 씨가 사전에 목적한 연출은 아니라는 것, 단지 당시 분위기를 탄 노홍철 씨의 돌발 행동이었을 뿐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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