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가요계에서 김건모는 전설이었다. 1992년 1집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를 통하여 얼굴없는 가수로 데뷔한 이후 개그맨을 웃기는 가수로서 김원준, 신동엽과 함께 한동안 예능계를 주름잡았다. 얼마전 김건모 스스로 밝혔던 것처럼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에 적극적으로 출연했던 최초의 가수이자, 예능에서 얻은 인지도와 인기를 기반으로 음반을 성공시키는 공식을 세운 이가 바로 김건모였던 것이다. 예능의 '마른털' 김건모는 1993년 발표한 2집 '핑계'를 통해서 밀리언셀러로 우뚝서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에 레게 열풍이 상륙하도록 만들었다. 2집의 대성공은 김건모를 단순히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가수에서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형가수로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었다. 이때부터 실질적으로 가요계를 지배했던 것은 김건모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십대들의 대변자로서, 신승훈은 고급스런 음악성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였다면 김건모는 특유의 재치와 유머감각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섰다. 3집 '잘못된 만남'의 공식판매기록 280만장이 말해주듯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 김건모의 대결에서 실질적으로 우위를 점했던 사람은 바로 김건모였던 것이다.
1996년 5월은 김건모와 신승훈의 유명한 맞대결이 벌어졌던 시기였다. 김건모는 3집을 통해서 국내최고의 가수로 올라선 이후 신승훈, 박미경, 노이즈와 함께 소속되어 있던 '라인음향'에서 전격적으로 독립하였다. 그당시 김건모가 내세웠던 이유가 바로 자신은 '솔리드'처럼 정통 'R&B'를 하고 싶은데 '라인음향'의 프로듀서인 김창환이 자꾸만 댄스음악만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내부 사정이야 어찌되엇든 김건모의 독립은 '라인음향'에 대한 배신으로 비추어졌고 '라인음향'은 신승훈을 내세워 김건모와 맞대결 시킴으로서 김건모를 응징하려 시도했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것이 1996년 5월의 '빅4 대결'이었다. 그 당시 막 컴백하여 1위를 하고 있던 '솔리드'에게서 'R.ef'가 1위자리를 빼앗고, 곧이어 컴백한 신승훈이 'R.ef'로부터 1위자리를 넘겨받자, 이번에는 김건모가 컴백하여 신승훈을 1위자리에서 밀어내었던 그야말로 불꽃튀는 경쟁이 벌어졌었다. 신승훈이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통해서 유달리 짧았던 5집활동을 마무리 하면서 '다음 앨범에서는 좀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활동하고 싶다.'라는 식의 술회를 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듯이 90년대 가요계의 최고 스타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아니었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은 십대들의 대변자로서 십대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십대는 물론 이, 삼십대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팬층을 가지고 있었던 김건모는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음반판매량과 대중적인 인기면에서 앞서곤 했었다. 물론 서태지가 문화계에 미치는 파급력과 영향력은 김건모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서 90년대 최고 인기가수는 가장 많은 음반판매량과 가장 많은 가요대상 수상자인 김건모임이 분명했다.
김건모가 90년대 가수왕이라고 한다면 80년대 가수왕은 단연 조용필이었다. 조용필은 시대가 변화하고 가요계의 트렌드가 달라지자 과감히 주 활동무대를 TV에서 공연무대로 옮겼다. 80년대만 해도 TV만 틀면 나오던 조용필이 90년대부터는 좀처럼 TV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조용필의 선택은 탁월했다.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등과 직접적으로 경쟁하기 보다는 꾸준한 투어공연을 통해서 자신의 인기와 명성으로 전설화 시키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당시 조용필이 계속 TV에 남아있었다면 지금처럼 후배가수들이 가장 존경하는 신화같은 '가인' 조용필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용필 이전에 TV에서 모습을 감춘 최고인기 가수로 나훈아를 들 수 있다. 얼마전 악성루머 해명 기자회견에서 그 특유의 카리스마가 다시한번 확인되었듯이, 나훈아는 일찌감치 TV를 포기함으로서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었다. 추석 때마다 특별기획으로 '나훈아쇼'가 방송되고, 방송에서 얼굴한번 보려면 방송관계자들이 사정사정해야할 정도로 나훈아는 스스로를 전설화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가요계의 전설이 된 조용필과 나훈아, 두 사람 모두 변화되는 환경에 맞혀서 자신이 서 있어야할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에 반하여 최근 김건모가 보이는 행보는 조용필과 나훈아의 행보와는 정 반대되는 것이기에 다소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몇년전 공연장에 있어야할 김건모가 난데없이 높은 개런티의 밤무대 투어를 다녀 구설수에 오르고, TV에서 은퇴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해 놓고는 슬그머니 다시 출연하기 시작하고, 방송에 성의없이 임하여 시청자들로부터 비난세례 받더니, 급기야 자기 스스로 추구하는 음악색깔이 안맞아서 갈라섰던 김창환과 다시 만나 21세기에 90년대 음악을 들고 12집으로 컴백하였다. 더욱이 12집의 음반활동도 90년대식에서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거의 틀면 나오는 수준으로 예능 프로그램들마다 얼굴을 비추는 것도 모자라 초등학교 5, 6학년에서 중학고 1, 2학년들이나 열광하는 쇼프로그램에서 나이 40이 된 김건모가 춤을 추며 노래 부르고 있는 것이다. 즉, 이제 슬슬 TV보다는 공연무대로 주 활동무대를 옮긴 채 자신이 쌓은 업적을 전설로서 만들어가야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김건모의 활동방식은 여전히 90년대에 머무르고 있다.
물론 김건모는 신비주의보다는 친근함을 유지하여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케이스였다. 그러나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활동방식은 적절하게 변화해야만 한다. 90년대 먹혔던 활동방식이 21세기에도 먹힐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크나큰 오산이다. 시대흐름, 환경, 트렌드, 문화코드가 확연히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김건모의 12집은 김건모의 음반사상 최악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태지, 이효리, 엄정화까지 90년대 스타들이 최근 가요계에서 선세이션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90년대 가요계의 제왕이었던 김건모의 12집은 한터차트 기준으로 고작 6,547장만이 팔렸으며 주간 음원차트에서도 멜론 44위, 도시락 22위, 싸이월드 25위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다. 이쯤되면 어떤 인터넷 기사에서 언급한대로 김건모의 몰락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참으로 답답한 것은 이제 스스로를 전설로 만들어가야할 시기에 오히려 김건모는 다시 90년대 방식으로 회귀하였다는 사실이다. 김건모의 최대 성공작 3집 '잘못된 만남'이 발표되었던 시기는 1995년이다. 최대 성공작 3집과 김건모의 최대 실패작이 될 가능성이 높은 12집 사이에는 무려 13년이라는 갭이 존재한다. 그 갭을 무시한 채 예전에 용사들을 다시모으고 예전의 작전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예전 같은 성공과 영광이 다시 찾아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 세월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진만큼 가수왕이었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김건모도 주 활동무대를 옮겨서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올린 명성을 전설화시켜야만 하는 시기에, 자신이 아직 창창하다는 것을 애써 보여주려는 듯이 TV에서 까마득한 후배들과 어울려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모습은 스스로를 조롱거리로 만들 뿐이다.
막말로 김건모가 전성기일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초등학교 5, 6학년들이 열광적으로 풍선을 흔드는 쇼프로그램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고 해서 김건모가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고작해야 아직 젊은 세대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자기만족뿐일 것이다. 김건모가 있어야할 무대는 초등학교 5, 6학년들이 장악하고 있는 TV 쇼프로그램이 아니라 김건모의 음악에 열광해주며 김건모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 성인팬들의 곁이다. 조용필과 나훈아가 그랬던 것처럼 김건모도 자신을 절대적으로 지지해주는 팬들과 함께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지켜가며 90년대 가수왕으로서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머지않아 조용필에게 향했던 후배가수들의 존경이 김건모에게로 이어졌을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듯이 80년대 가수왕 조용필은 TV에서 모습을 감춘 그 순간부터 살아있는 전설로서 대중음악사에 자리매김하였다. 그런데 그 뒤를 이어야할 90년대 가수왕 김건모는 40이 된 지금까지도 TV에서 90년대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건모라는 전설을 스스로 흠집내고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김건모는 자신이 현 시대에 어디에 서 있어야할지 깊이 생각해봐야만 한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기자리에 서 있을 때만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기 마련이다. 김건모가 계속 이런식으로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마땅히 김건모가 누려야할 90년대의 전설은 신승훈이나 서태지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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